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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방증상대론(方證相對論)

엉거주춤춤 2014. 4. 15. 16:03

방증상대론(方證相對論)



북경중의약대학(北京中醫藥大學) 유도주(劉渡舟) 교수




우리가 길을 가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배움의 길도 이와 같아 멀리 돌아가는 길과 지름길 어려운 길과 쉬운 길 등등 여러 가지의 길이 있다.

자공(子貢)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공자의 담이 너무 높아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百官)의 부(富)를 볼 수 없을 것이다.”(물론 여기서의 비유가 합당한지는 모르겠다.)
상한을 공부한다는 것도 이와 같다. 《상한론》의 벽은 높고 두터워 어떻게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인가는 상한을 배우려고 하는 이들에겐 중요한 관건이 된다. 학습방법이 올바르게 선택될 때 학문의 조예가 더욱 심화되고 들인 노력에 비해 성과도 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은 이를 위해 전신의 노력을 다해 그 방법을 찾았었다. 한번은 진대(晋代)의 황보밀(皇甫謐)이 쓴 《침구갑을경(針灸甲乙經)》의 서문을 읽다가 그 해답을 찾아낸 것이다.


서문에 이르기를 : “이윤(伊尹)은 그 놀라운 재능으로 《신농본초경》을 인용하여 《탕액(湯液)》을 만들었다. 근세의 태의(太醫)가 왕숙화(王叔和)로 하여금 중경이 남긴 심오한 의리를 함께 정리하도록 하니, 이 모두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중경의 근본은 이윤(伊尹)의 법에 있고, 이윤(伊尹)의 근본은 신농의 경에 있으니, 어찌 대성현의 뜻을 얻었다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본인은 “중경의 근본은 이윤의 법에 있다(仲景本伊尹之法).”와 “이윤의 근본은 신농의 경에 있다(伊尹本神農之經).”의 두 본(本)자에서 한의학에 학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경은 신농학파(神農學派)의 전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상한론》의 이 두터운 벽을 뚫고 지나가기 위해선 반드시 처방과 증상(方證)이라는 대문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본인은 여기에서 우선 《상한론》의 방증(方證)의 대의를 설명하고자 한다.
《상한론》의 처방을 ‘경방(經方)’이라고 한다. 이것은 이윤(伊尹)의 《탕액경(湯液經)》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서한(西漢)의 태창공 순우의(淳于意)와 동한(東漢)의 장사태수 장중경(張仲景)에게 계승되어 오늘날에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경방(經方)’의 특징은 약이 적고 세밀하여 절묘하기 이를 데 없고, 능히 환자를 기사회생하며, 효과가 마치 북과 채의 관계처럼 절묘한 조화를 이뤄 능히 처방서의 종주라 부를 만 하다.

《상한론》에서 말하는 ‘증(證)’은 ‘증후(證候)’라고도 하며, 객관적 검증에 의해 질병의 고통을 반영하는 것이다. 증(證)은 객관적규율에 의한 규율성과 자신만의 특수성을 모두 가지고 있어, 의사가 분석연구하고 종합하여 귀납할 수 있는 등의 묘용(妙用)을 제공한다.
‘증(證)’은 날조하여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이는 생리촵병리상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산물이다. 병과 나누어 볼 수도 있지만, 또 절대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병에 있어 증이란 마치 형상을 따르는 그림자와도 같다. 그러므로 증상을 취하는 각도로 보면, 한의학은 어떤 면으론 서양의학보다 우수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병'은 '증'을 떠나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변증'과 '변병'이 거리가 멀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증(證)’에 있어 핵심이 되는 것을 옛날 사람은 ‘기(機: 살아 생동하는 원리 혹은 관건)’라고 불렀다. 무릇 사물이 처음 싹을 피울 때는 모두 그 기(機)의 의미를 내포하고있다.

옛날 장중경이 시중(侍中)의 관직에 있는 왕중선(王仲宣)을 보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때 중선의 나이 스물이었다.
중경은 중선을 보고 말하기를 “당신은 현재 병에 걸려 있습니다. 사십이 되면 눈썹이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고, 눈썹이 떨어지고 반년이 지난 후 죽게 될 것입니다. 지금 오석탕(五石湯)을 먹는다면 그 화를 면할 수 있을 테니 약을 먹는 것이 어떠한지요.”
허나 중선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그가 준 약도 먹지 않았다.
삼일 후 중경은 중선을 보고 묻기를 “약을 먹었습니까?”
중선은 거짓으로 먹었다고 답하였으나, 중경이 다시 말하기를,
“얼굴색은 결코 약을 먹지 않은 상태인데 당신은 어찌하여 생명을 그리 가벼이 여기는 겨요.”


그러나 중선은 이 역시 가벼이 흘려 듣고 믿지를 않았다. 이십년이 흐르고 중선이 사십이 되던 해, 과연 중경의 예언대로 눈썹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백팔십 칠일이 지난 후 결국 사망하였다.
이상의 기록을 보면 중경의 생사를 예지하는 능력이 가히 입신의 경지라고 할 수 있으나, 그가 말했던 것처럼 얼굴색과 그 증후들로 이러한 예견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옛 어른들이 말하는 “달무리가 지고 바람이 불면 비가 온다.”는 것들도 자그마한 사물의 변화를 통해 그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언뜻 느끼기에 현상이 원리에 우선해서 나타나는 것 같아 사람들로 하여금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지는 몰라도, 한의학의 입장으로만 설명을 하자면 사실 ‘증(證)’의 존재와 반응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단 현상이 보이면 그 원리는 이미 있다는 것을 말한다.

옛날의 의사는 이를 알아 하늘과 땅의 이치에 통해 있었으니, 생사를 예측하고 환자를 대하여 거침이 없음은, ‘증(證)’을 알았고 그 원리를 이해하였기 때문이니, 어찌 변증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한의학은 변증을 우선으로 한다.

 

《상한론》은 기황(岐黃)의 학술을 토대로 하고 탕액(湯液)을 만들게 된 원뜻을 좇았으며, 또한 빼어난 문장으로 써내려 간, 가히 독보적인 한의학의 혼이라 할 수 있다.
《상한론》은 육경변증의 규율을 종합하였고 또한 주증(主證), 겸증(兼證), 변증(變證), 협잡증(夾雜證), 이 네 단계의 분류법을 확정하였다.

임상에서는 우선 주증(主證)을 파악해야 한다.

주증(主證)- 주증은 병의 전체국면을 결정하며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므로 주증은 핵심이다. 사물의 핵심만 파악하면 나머지는 이에 따라 해결되므로, 그에 부속된 겸증(兼證), 변증(變證), 협잡증(夾雜證) 등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예를 들어 태양병(太陽病) 중풍(中風)을 치료하는 계지탕(桂枝湯)의 주증은 땀이 나고 열이 나며 오한이 나는 증상을 주(主)로 한다. 상한(傷寒)을 치료하는 마황탕(麻黃湯)의 주증은 땀이 없고 오한이 있으며 몸이 아픈 것(:몸살)을 주(主)로 한다.


소양병(少陽病)을 치료하는 시호탕(柴胡湯)의 주증은 입이 쓰고 구토를 하며 옆구리가 결리고 아프거나 뻐근한 증상 등을 주(主)로 한다.

양명병(陽明病)을 치료하는 백호탕(白虎湯)의 주증은 갈증이 심하고 물을 마시길 원한다. 몸에 열이 심하고 땀이 흐르며 맥은 홍대(洪大)한 것을 주(主)로 한다. 대승기탕(大承氣湯)의 주증은 대변이 없고 배가 빵빵하고 아프다. 심하면 조열(潮熱)과 헛소리를 하는 증상을 주(主)로 한다.


태음병(太陰病)을 치료하는 리중탕(理中湯)의 주증은 토하고 설사하며 복부가 팽만하고 식욕이 떨어지는 증상들을 주(主)로 한다.

소음병(少陰病)을 치료하는 사역탕(四逆湯)의 주증은 사지 손발이 차고 설사를 하는 것을 주(主)로 한다.

궐음증(厥陰證)을 치료하는 오매환(烏梅丸)의 주증은 소갈(消渴)이 있고 기(氣)가 상충해 심장을 치며 심장부위가 아프다. 구토를 하고 설사가 있으며 부서진 회충의 유체를 토해내기도 하는 등의 증상을 주(主)로 한다.

육경(六經)의 주증(主證)은 변증(辨證)의 핵심이다.

 

우선적으로 주증을 장악한 후라야 변증의 중점을 두드러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고귀한 유산은 누구든지 계승할 수 있는 것이다.

겸증(兼證)- 겸증(兼證)이란 주증과 더불어 나타나는 증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계지탕 주증의 전제 하에 나타나는 천식 또는 목덜미가 뻗뻗해지는 증상 등을 말한다.
변증(變證)- 변증(變證)이란 의사가 오진하여 잘못 치료했을 때 원래 가지고 있던 주증이 또 다른 병의 상태로 변환된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소양병을 잘못 판단해 발한(發汗) 약을 과도하게 쓴 경우 병이 전환되어 헛소리를 한다거나 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태양병을 잘못 판단하여 찬 약을 과도하게 사용한 경우엔 병이 설사를 주증으로 하는 증상으로 바뀌게 된다.

협잡증(夾雜證)- 이것이 발생하는 데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사람의 체질이 서로 다른 관계로 감염된 질병이 비록 같다 해도 발병된 상태가 서로 달라진다. 다른 하나는 원래 지병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새로 상한에 걸린 경우로 지병과 신병, 겉으로 드러나는 상태(標病)와 내부에 존재하는 모순(本病), 즉 다시 말해 표증(表證)과 리증(里證)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나타나는 상태이다.

이상으로 《상한론》의 복잡하고 다양하게 표현되어지는 증후학(證候學)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즉 다시 말해서 증후의 변화와 표현은 무궁무진하며, 옛 성현들이 남긴 변증의 방법 또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가야 할 중대한 임무가 있는 것이다.

중경(仲景)이후에 후세의 수많은 의가들은 육경변증(六經辨證)의 기초 하에 장부변증법(臟腑辨證法), 삼초변증법(三焦辨證法), 위기영혈변증법(衛氣營血辨證法) 등등 수많은 변증법을 만들어 내어 변증학의 풍요롭게 했으며, 변증의 범위를 넓힘으로 육경변증의 부족함을 메웠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한의학의 변증방법은 교과서적으로 그렇게 단순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이것은 이것이다 하는 방법으로 고집하거나, 일말의 생동감도 없는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선현들이 말하는 ‘의자의야(醫者意也)’의 ‘의(意)’자는 교육의 범주를 벗어나 의사 본인의 독립적인 사유에 의거해 이론, 임상경험, 조사연구 등을 통하여 수집된 자료들을 운용하여 자기 스스로의 변증관을 가지며, 이러한 자신의 재능으로 변증논치를 한다면 천마를 타고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듯이 변증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음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역대 의가들 가운데 이러한 이가 한 둘이 아니었으며, 당시의 의술과 그의 의술수준을 여실히 드러낸다.

종합적으로 말해서 병을 인식하는 것은 증(證)에 있고,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처방(方)에 있는 것이다.
증상과 처방은 상한학의 관건으로 역대 의가들은 이를 상당히 중시여겼다. 그래서 방증상대론이 제기되었고 이것은 후대에 상한을 연구하는 많은 이들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다.

역대의 의가들 가운데 최초로 ‘방증상대론’을 제시한 것은, 명청시대의 착간파(錯簡派)의 의가들도 아니오, 일본 강호시대(江戶時代)의 고방파(古方派)의 의가들도 아닌 기원전 682년 당나라 때의 손사막(孫思邈)이란 위대한 명의가 제창한 것이다.
손사막은 자신이 저술한 《千金翼方》이란 책의 제9권 서문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상한의 열병은 예로부터 있어 왔다. 옛 성현들께서는 대개가 예방을 강조하여 왔지만 장중경에 이르러 비로소 이를 치료할 방법을 만들어 내니 그 효과가 가히 놀라울 따름이라. 그러나 깊이 이치를 탐구하지 않는다면 그 의미를 이해하기 힘드니, 의술을 하는 사람이 이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의원에 있는 의사들이 상한을 치료할 때 항상 대청룡탕(大靑龍湯)이나 지모(知母)같은 찬성질의 약을 투여하는 것을 자주 보아 왔는데, 이는 중경의 본래 의미와 너무도 상반된 방법이다. 그의 처방이 비록 성행하기는 하나 백방이 무효한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처방의 의미를 세밀히 연구해보면 크게 세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첫째는 계지요, 둘째는 마황이며, 셋째는 청룡이다. 이 세 가지 처방이면 상한을 치료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위에 서술한 손씨의 논술에 의거해 분석해보면 그의 요지는 다음의 세 가지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1.방증상대론의 제시

왕숙화(王叔和)의 정리를 거친 《상한론》의 조문은 증상과 처방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다시 말해 증상 설명 밑에 처방이 나와 있지 않았다. 이러한 형식은 《상한론》을 공부하고 실제 임상에 활용하는 데 상당히 이롭지 못하다. 이처럼 방과 증이 서로 떨어져 있어서는 쉽게 상한을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것에 착안하여, 그는 방과 증이 한 조문에 서로 연결되어, 종류별로 서로 연결하는 방법을 제창한 것이다. 다시 말해 증상에 대한 설명 아래 그 처방을 붙임으로서 처방이 증상에 의해 설립되고, 증상은 처방을 따라 그 모습을 드러내는, 즉 처방과 증상이 서로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대응하는 상태로 변화하여 서로를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인식시킨 것이다.
이러한 그의 인식과 방법은 상한을 공부하는 데 있어 세 가지 좋은 점을 가져왔다.




첫째, 방증의 중요성과 우수성을 제시하였다.
둘째, 처방과 증상의 집합과 귀납을 촉진시켰다.
셋째, 변증논치의 속도를 가속화 하였고, 《상한론》으로 향하는 대문을 열었다.

손사막이 ‘방증상대론’의 개혁방법을 제시한 이후, 공부하는 방법과 첩경에도 상당한 진보가 있었으며, 이것은 당대(唐代) ‘상한학’의 일대 발명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2. 찬성질의 약을 사용하여 상한을 치료하는 잘못을 엄준하게 비평하였다

《상한론》의 제일 첫번째 처방은 ‘계지탕’이고 다음은 ‘마황탕’이다. 이는 ‘상한’은 그래도 풍한에 의해 사람이 손상된 것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사람들의 ‘상한’에 대한 인식은 한(寒)과 온(溫) 사이에서 그 견해가 분분하고, 여러 가지 학설들이 난무하여 그 개념이 혼란스러울 뿐, 중경의 참뜻을 벗어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한(寒)을 온(溫)이라고 가르치고, 노루를 말이라고 하는 문제들이 수도 없이 발생하여, 찬성질의 약으로 상한을 치료하면서 습관처럼 그 원인을 찾지않는 이가 다반사이다.

오늘날 《상한론》을 공부하는 어려움을 본인은 세 가지로 본다. 경락학설의 어려움이 첫째요, 기화학설의 어려움이 둘째이며, 계지탕 마황탕으로 상한을 치료하는 것이 셋째이다.
손사막은 침통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위의 문장에서처럼 그 폐단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도연명(陶淵明)의 “今是昨非(오늘의 것이 옳고 옛 것이 그르다)”는 경계의 말도, 비록 찬성질의 약을 즐겨 사용하며 더운 성질의 약을 사용하는 폐단을 꾸짖고는 있지만, 이 또한 잘못을 바로 잡으려 하다 오히려 그 도가 지나쳐버린 경우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3. 풍한을 치료하는 세 가지 처방을 건립하였다

손사막은 《상한론》에 나오는 여러 개의 처방 가운데 그 정수를 추리고 선별하여, ‘상한’을 치료하는 대의는 ‘계지탕법’ ‘마황탕법’ ‘청룡탕법’ 이 세 가지를 넘지 않는다고 귀납하였다.
아울러 이에 관해 덧붙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태양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계지탕법이 그 첫번째요(57개의 증과 5개의 처방), 마황탕법을 사용하는 것이 그 두번째요(16개의 증과 4개의 처방), 청룡탕법을 사용하는 것이 그 세번째이다(4개의 증과 2개의 처방).”

이를 보아 알 수 있듯이, 태양병의 처방 대다수가 ‘풍한’을 치료하는 것이고, 그 외 시호탕 등의 처방들은 토(吐), 하(下), 발한(發汗) 후, 병이 낫지 않은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풍한치료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태양병을 ‘계지탕법’ ‘마황탕법’ ‘청룡탕법’ 이 세 가지 방법으로 분류하여 확립한 것은, 마치 장군이 깃발을 세우고 북을 치면 그 휘하로 병사들이 몰려드는 것처럼, 처방과 증상이 서로 대응하면서도 문란하지 않고 가지런한 것이 상한을 치료하는 법이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일본의 강호시기(江戶時期)의 ‘고방파(古方派)’ 의학자인 길익동동(吉益東洞)이 저술한 《類聚方》은 손사막의 ‘방증상대론’에서 계발하여 이를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이 책은 책의 내용도 훌륭할 뿐 아니라 임상학에 있어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책이다.